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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6.궁궐이 돌아왔다 제 2화 - 궁궐의 재발견

궁궐은 왕의 생활공간인 ‘궁(宮)’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담인 ‘궐(闕)’을 합친 말이다.
궁궐은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훌륭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와
지우고 싶은 역사의 흔적을 동시에 가진 슬픔과 기쁨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깊은 이야기와 절제된 아름다움, 전통의 향기를 간직한 곳.
“살아 숨 쉬는 궁궐로 모시겠사옵니다~”

궁궐의 건물들도 ‘신분’이 있다

궁궐 구석구석의 다양한 모습 조선의 엄격한 ‘신분제도’는 사람뿐만 아니라 궁궐 안 건물에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궁궐에는 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실 가족부터 내시, 궁녀, 노비에 이르기까지
여러 계층의 수많은 사람이 기거하고 활동했는데, 이들은 신분에 따라 활동하는 건물이 달랐다.
건물의 용도와 주인의 신분에 따라 건물 이름도 달리 붙여졌는데, 건물 이름의 마지막 글자를 보면 신분을 알 수 있다.
가장 격이 높은 건물에는 '전(殿)' 자가 붙어졌고, 그 다음은 당, 합, 각, 재, 헌, 누, 정의 순으로 등급을 매길 수 있다.
대체로 규모가 큰 것부터 작은 것으로, 품격이 높은 것에서 낮은 것으로,
공식행사를 치르는 곳에서 일상거주용으로 이어지는 순서로 건물의 신분이 정해졌다.

참고자료 = 도서<나도 문화해설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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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의 그 공간 그 사건

사정전

세조와 사육신의 지독한 '악연의 공간' 사정전은 조선시대 왕이 정사를 보는 대표적인 공간이었고, 왕과 신하가 머리를 맞대며 학문을
토론하는 경연이 자주 벌어지기도 한 곳이었다. 그러나 1453년 계유정난으로 파생된 불법적인
왕위 찬탈은 사정전 앞마당을 처참한 고문의 현장으로 만들었다. 지금으로부터 550여 년 전 사정전
앞뜰에는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했고, 단말마의 비명이 궁궐의 담을 타고 넘었다.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성원 등 사육신은 형틀에 묶인 채 세조(조선 7대 왕)에게 처참히 고문당했다.
이 자리는 바로 왕이 중죄인에게 죄를 묻는 친국 자리였다. 세조는 조카였던 단종을 내쫓고 자기가 왕이
되었다. 사육신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단종을 다시 왕의 자리에 올리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 일로 인해 결국 단종을 영월로 유배를 가고 사육신은 죽임을 당했다.

흠경각

'천재 과학자' 장영실의 혼이 서려 있는 곳 흠경각은 내전과 경회루 사이에 위치한 작은 전각이다. 이곳 흠경각은 천민 출신이었지만,
당대의 엄격한 신분 사회의 벽을 뛰어넘어 자신의 뜻을 이룬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에 의해
설계된 건물이다. 흠경각 안에는 장영실이 만든 최고의 작품인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 '자격루'가 설치되어 있었다. 지금의 건물은 새로 복원된 건물이지만,
570여 년 전 과학을 중시했던 세종대왕과 천재 과학자 장영실의 이야기가 흠경각에 담겨 있다.
자격루를 비롯해 세계 최고의 측우기, 해시계인 앙부일구, 별자리를 관측할 수 있는 혼천의 등
세종대왕이 꿈꾸던 과학 강국 조선의 의지를 모두 실현하게 해주었던 천재 과학자 장영실의
업적이 서려 있는 곳, 조선 과학의 산실이었던 곳, 그곳이 바로 흠경각이다.

경회루

흥청망청했던 '한 임금의 광기'가 스민 곳 충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고 매일 술자리를 가지며 놀기를 즐겼던
연산군(조선 10대 왕)이 자주 찾던 곳이 바로 경회루이다.
연산군에게 경복궁 후원인 경회루는 ‘놀기에 너무나도 좋은 장소’였다.
그에게 경회루는 왕이 힘든 업무에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 아니라, 왕의 광기를 발산하는
놀이터가 되어버린 것이다. 연산군은 경회루 연못에 배를 띄우며 놀기를 즐겼고,
전국의 기녀를 경회루로 자주 불러들였다. 그때 궁궐로 들어온 기생들을 ‘흥청’이라고 불렀다.
마음껏 떠들고 노는 것을 보고 '흥청거린다'라고 표현하는데, 그 말은 바로 여기서 유래된 말이다.

향원정

우리나라 최초 ‘반짝반짝’ 전기를 밝힌 곳 세계적인 발명가 에디슨이 경복궁과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1882년 5월 22일 조선은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맺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조선 정부는
1883년 9월 8일에 친선 사절단을 미국에 파견하였다. 이때 이들은 '에디슨 전등회사'를 방문하게
되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촛불이 아닌 전깃불을 보게 되었다. 귀국하자마자 고종에게 미국에서 본
전기의 위대함에 대해 자세히 보고했다. 이에 고종은 에디슨 전등회사에 전기등 설비를 발주하고,
에디슨 전등회사는 전기 기자재와 전기 기사 업튼을 파견해 1887년 3월 경복궁 향원정 주변에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 발전 시설과 가로등을 시공하게 된다. 이는 16촉광의 전등 750개를 켤 수 있는
규모로 동양에서 가장 우수한 설비였으며,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한지 불과 8년 만에 설치한 것이었다.

참고자료 = 도서<쏭내관의 재미있는 궁궐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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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의 美' 클로즈업하다

궁궐의 웅장함에 빠져 구석구석 숨어있는 정교한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무심코 지나쳤을 공간 일지라도,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면 사소한 문양 하나도 달리 보일 것이다.
우리의 궁궐이 얼마나 아름답고 매력적인 곳인지 조금 더 가까이서 느껴보길 바란다.
숨겨진 궁궐의 아름다움으로 Zoom-In!
담장, 담벼락, 합각, 굴뚝에 무늬로 장식한 것을 통틀어 꽃담이라고 한다.
꽃담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보물로 지정된 경복궁 자경전의 꽃담과 십장생 굴뚝, 교태전의 아미산 굴뚝이다. 자경전 꽃담은 가장 아름다운 궁궐 담장 중 하나로 꼽히는 곳으로, 섬세한 정서와 뛰어난 미의식이 돋보이는 곳이다. 이곳은 경복궁에서 가장 호사스럽게 단장한 곳으로, 궁궐 안에서 여주인들이 머무는 공간을 장식을 통해 외부에 영역을 공표한 것이다. 자경전 꽃담에는 만(일만 萬), 수(목숨 壽), 복(복 福), 강(편안할 康), 녕(편안할 寧) 같은 한자와 매화, 국화, 대나무, 모란, 연꽃, 복숭아, 석류, 난초 문양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 이 한자들과 문양들에는 대왕대비가 복을 받아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오방색의 향연
단청(丹靑)이란 붉을 단(丹)+푸를 청(靑)을 합한 말로써 목조건물의 벽, 기둥, 천장 같은 곳에 여러 가지 빛깔1)무늬를 그려서 아름답게 장식한 것을 말한다. 단청에 드는 힘이 전체 건축의 절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단청이 가지는 힘은 상당하다. 특히 궁궐의 건물과 기둥에 그려져 있는 단청은 디자인의 기본 원리2)가 잘 표현되어 있다. 단청은 외관상 미적 역할 뿐만 아니라, 목조건물을 비바람 같은 외부의 기후변화에 나무가 썩지 않도록 목재의 부식을 방지하고 해충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적 역할과 건물의 특수성과 위계성을 강조하기 위함이 목적이다. 1) 오행사상에 따라 가본적으로 청, 적, 황, 흑, 백의 오방색을 기본색으로 배합해 사용
2) 균형, 반복, 조화, 리듬, 변화, 대비, 대칭
소박하지만 멋스러운 문창살
창덕궁 낙선재는 궁궐의 화려한 건물들과 달리 단청을 올리지 않은 소박한 곳이다. 하지만 낙선재에 들어서면 소박할지 언정 결코 초라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단아하면서 검소하고, 견고하면서도 살짝 멋을 입힌 다양한 문양의 문창살 덕분이다. 햇살에 비친 창호살이 그려내는 기하학적인 문양은 낙선재가 가지고 있는 격조 높은 미의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작은 창에는 완자문, 세로로 긴 문에는 변형된 아자문, 작은방 바라지창에는 촘촘한 우물살문 등 방의 규모와 용도에 맞게 적절히 구성되어 있다. 각기 다른 25가지 모양의 문창살은 화려함보다는 섬세하고 품위 있는 아름다움으로 공간 전체를 감싸고 있다.

자료=도서<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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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의 낮과 밤

광화문의 낮
광화문의 밤

경복궁 최고 '깜찍이'는 누구? - 경복궁 귀요미 선발대회

우리나라에서 돌로 만든 동물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은 어디일까?
석조 동물원으로 불리기까지 하는 곳, 바로 ‘경복궁’이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을 지키고 있는 상상의 동물 해태(해치)를 비롯하여 국보 제223호 근정전에만 56마리의 동물상이 있고, 경복궁 전체에 880개가 넘는 석조조형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렇듯 경복궁에선 전설의 것부터 현존의 것까지 수많은 동물상과 마주친다. 화기(火氣)와 재앙을 물리칠 목적으로 세워진 것들이기에 위압적인 모습을 해야 정상인데 하나같이 순박하고 익살스럽다. 동물 석상의 얼굴에서 우리 조상의 해학과 여유가 느껴진다.
보면 볼수록 절로 웃음이 나는 동물 석상들.
그 중에서 가장 익살스러운 표정의 경복궁 최고 ‘귀요미’는 누구?
페이스북에서 궁궐 귀요미 투표하기
사진을 뒤집으면 프로필을 보실 수 있어요!

참고자료 = 도서<쏭내관의 재미있는 궁궐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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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와 만나다

조선왕조는 이상적 유교 국가 구현의 철학을 담아 당대 최고의 기술로 궁궐을 조성하였다.
이후 600여 년간 여러 역사적 사건 속에서 영건과 중건·수리가 거듭했으나, 1910년 일제에 의해 궁궐의 훼손과 철거가 자행되었다.
경복궁을 비롯한 궁궐들은 제 모습을 잃고 공원이나 유원지의 모습으로 바뀌고, 박람회와 같은 행사장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1980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문화 관광 산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될 즈음 조선 왕궁의 복원과 정화 사업이 시작되었고,
궁궐은 과거 공원과 유원지의 모습을 탈피하고 역사성을 보존하는 사적지로 인식의 전환을 맞게 되었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인 궁궐의 복원과 정비가 이루어지면서 서서히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게 되었다.
과거와 현대의 문명이 공존하는 궁궐, 과거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창경궁 대온실
1957
1957년 3월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창경원(현재 창경궁) 식물원 온실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1909년 창경궁에 만들어진 대온실은 목재와 철재, 유리로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다.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창덕궁 낙선재
1966
1966년 창덕궁 낙선재 순정효황후 윤씨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의 모습.
1966년 2월 3일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순정효황후 윤씨는 순종의 계비로서
격동의 근현대사를 체험하며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국모였다.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경복궁 광화문
1968
1968년 12월 광화문 준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현판 제막식을 하는 모습.
광화문 편액은 준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한글로 휘호한 것이다.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창경궁 춘당지
1970
1970년 창경원(현재 창경궁) 춘당지를 찾아 케이블카를 타는 상춘객들의 모습.
1984년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복원하기 위해 케이블카를 비롯한 놀이시설은 철거되거나, 서울대공원과 서울랜드로 옮겨갔다.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덕수궁 대한문
1971
1971년 1월 덕수궁 대한문 이전 공사 준공식 모습.
태평로 확장 공사로 인해 대한문은 1971년, 원래의 자리에서 33m 물러선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경복궁 경회루
1977
1977년 꽁꽁 언 경복궁 경회루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학생들의 모습.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컴퓨터 게임도 스마트폰도 없던 그 시절,
겨울이면 경복궁 경회루는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해 방학을 맞은 학생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놀이 공간이 되었다.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경복궁 향원정
1977
1977년 경복궁 향원정에서 그림 그리는 여학생들의 모습.
향원정은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사실주의 풍경 화가들이 가장 많이 그린 소재 중의 하나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덕수궁 즉조당
1977
1979년 덕수궁으로 소풍 온 어린이들의 모습.
요즘처럼 놀이공원이 많지 않았던 시절, 덕수궁은 어린이들의 소풍 필수코스로 애용되었다.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창경궁 홍화문
1977
1986년 중건된 창경궁을 찾은 시민들의 모습.
일제강점기 때 유원지로 꾸며지며 크게 훼손되고 명칭도 창경원으로 격하됐던 창경궁은
1984년부터 2년 반의 복원을 거쳐 1986년 창경궁으로서 다시 시민들에게 공개되었다.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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